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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자주 울었다. 압록강 물가에서 우는 임금의 울음은 조정 대신들과 선전관, 명군 총병부 관리들의 입으로 퍼졌다. 임금의 울음은 남쪽바다에까지 들렸다. 임금은 슬피 울었고, 오래오래 울었다. 피난 행궁이 들어선 의주목사의 동헌은 처마가 내려 앉고 마루가 삐걱거렸다. 골기와 틈새에서 잡초가 올라왔고, 대청 대들보 사개가 튀틀렸다. 강가의 행궁은 빈 절간처럼 적막했다. 밀물이 강을 거스를 때마다 밀리는 물은 소용돌이 치며 철썩거렸고, 강 건너편은 나라가 아니었다. 북쪽의 짧은 해가 일찍 저물어 밤은 길었고 겨우내 눈이 쌓여 길은 보이지 않았다.
차고 푸른 해거름에 소복을 입은 임금은 동헌 마루에 쓰러져 울었다. 의주까지 호종(扈從)해서 따라온 중신들은 임금을 따라 울었다. 평양에 적이 들어왔고 북경으로 간 청병(請兵)의 사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서울의 적들은 종묘를 불질러 마구간을 차렸고 유림은 흩어져 근왕(勤王)의 기척도 없었다. 임금은 깊이 울었다. 임금은 버리고 떠난 종묘를 향해 남쪽으로 울었고, 북경을 향해 울었고 해뜨는 동쪽을 향해 울었다. 쓰러져 우는 임금의 야윈 어깨가 흔들렸다. 임금의 울음은 달래지지 않았다. 임금은 사무치게 울었다. 아무도 임금의 울음을 말릴 수 없었다. 강 건너로 지는 해가 마루위로 도열한 중신들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고, 중신들은 임금의 울음이 스스로 추스러질 때까지 임금을 따라 울었다.
서울을 버리기 전날 밤에 임금은 말했다.
- 종묘와 사직이 여기에 있는데 내가 어디로 가겠느냐
그 때 임금은 장안의 짚신을 걷어 들였고, 왕자와 비빈들에게 피난 차비를 갖추게 하고 있었다. 서울을 버릴 때 임금은 울었다. 임진강을 건널 때 임금은 중신들을 부르며 울었다.
- 성용아, 두수야,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이냐?
개성을 버릴때 울었고 평양에 닿았을 때 울었고 평양을 버릴 때 울었다. 평양을 버리기 전날 좌의정 윤두수는 임금에게 말했다.
- 온 평양 백성이 전하와 더불어 죽기로 이 성을 지키기를 원하나이다. 민심이 이만하니 성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행차가 또 평양을 떠나시면 나라는 일시에 무너질 것입니다.
임금은 대답했다.
- 경의 말이 옳으나 너무도 답답하다.
하삼도(下三道, 삼남)가 서로 내응해서 속히 창의의 군사를 휘몰고 올라오라는 교지를 써서 호남으로 보내고 나서 임금은 또 길에 울었다. 창호지 반조각을 잘라낸 종이에 가는 붓글씨로 쓴 교지였다.
평향을 떠날 때 비가 내렸다. 임금의 가마가 의주에 닿았을 때 호종 관원은 50여명이 남았다. 강을 건널 때마다 관원들은 달아났고, 달아난 자들을 잡아올 수도 없었다.
의주는 비어있었다. 백성들이 흩어져 버린 마을에는 인기척이 없었고 개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빈 마을에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의주가 멀리 보이는 언덕에서 임금은 가마를 세우고 남쪽을 향해 또 길에 울었다.
때때로 명나라 황제의 사신이 압록강을 건너왔다. 임금은 강가 나루터에서 황제의 사신을 맞았다. 사신이 황제의 말을 전했다.
너희가 본래 부강하다 하였는데 하루아침에 이 지경에 이른 까닭을 짐은 의아하게 여긴다.
임금은 길에 울었다. 신하들도 따라 울었다. 사신이 또 황제의 말을 전했다.
너희가 신하된 나라의 굳셈을 잃지 말고 스스로 조치하라.
임금은 흐느껴 울었고 중신들도 울었고 백성들도 울었다. 명의 구원병이 압로강을 넘어왔을 때 임금은 강가에까지 마중나가 울었다.
계사년에 임금은 환도했다. 정월에 의주를 떠난 임금의 가마는 그해 10월에 서울에 닿았다. 무악제를 넘자 모화관에서부터 백골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불타버린 대궐과 관청자리에 쑥부쟁이가 뒤엉켰고 갓 죽은 송장들이 불탄 대궐 앞까지 가득 널렸다. 서울로 돌아온 날 임금은 교서를 내렸다.
.... 이제 서울 백성들 중 죽은 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터이다. 살아남은 백성들이 마땅히 상복을 입고 있어야 하거늘, 상복입은 자를 볼 수 없으니 괴이하다. 난리중에 강상이 무너지고 윤기(倫紀)가 더렵혀진 탓이로되, 내 이를 심히 부끄럽게 여긴다. 서울의 각 부는 엄히 단속하여라.
임금은 종묘의 폐허 나가 길고 슬픈 울음을 울었다. 임금은 날을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울었다. 생원들이 상소를 올렸다.
.... 오늘 나라가 이지경이 된 것은 모두 류성용, 이산해의 죄입니다. 바라옵건대, 베어서 백성을 위로하시고 사직에 고하소서.
임금은 대답하지 않고 또 울었다. 임금의 울음은 달래지지 않았다. 임금은 기진하도록 슬피 울었고 길게 울었다. 임금의 울음은 정무(政務)와도 같았다. 임금의 울음은 뼈가 녹아 흐르듯이 깊었다. 남해 바다에까지 들리는 임금의 울음은 울음과 울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칼을 예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임금은 끝끝내 혼자였고 임금만이 적으로 둘러싸인 사직의 장자(長子)였다.
임진년에서 정유년에 이르는 동안에 나는 남해안 여러 수영에서 때때로 임금이 주는 교서를 받았다. 선전관이 교서 한 통을 들고 의주나 서울에서 남쪽 바다에까지 내려왔다. 임금의 언어는 장려했고 곡진했다. 임금의 언어는 임금의 울음을 닮아 있었다.
너희들이 아비로서 자식을 편히 못기르고 지아비로서 지어미를 보호해 주지 못하며, 죽어서 간과 골이 땅에 흩어지고, 죽어서도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은 모두 다 나의 허물이다. 올해도 결국 또 저물어 바람이 차가운데 나는 객지로 떠돌며 벼들어, 저 "시경"에 이른바 <눈비 내릴 때 떠나왔으되 어느덧 버들꽃 흩날린다>는 노래 그대로 세월의 덧없음을 견디지 못할지니라.
내가 따스운 옷을 입을 적이면 너희들은 옷이 없을 것이요, 수북이 담은 밥을 먹을 때 너희들은 밥이 없을 것이니 내 너희들의 배고픔을 생각했으며, 내 침소에 누워 잠을 청할적에 한데서 떨며 잠 못 드는 너희들의 밤을 생각하였다. 나라가 가난하고 백성의 힘이 다하여 너희들의 옷, 밥을 살피지 못하니 내 쓰리고 아픈 마음이 어찌 몸뚱이에 병이 든다 한들 이보다 더하랴.
너희들이 갑옷을 오래입어 서캐가 생겼으리니 어찌 참을 베고 자는 자의 괴로움을 견디어내느냐. 찬 바람 속에서 잠들며 외로이 떠도는 길에 쓰라린 정회가 깊을 것이며 습기 찬 안개속에서 병들어 죽는 근심도 크리라.
이제 가을바람이 불어 너희들의 그 남쪽 바다는 한결 더 추우리니, 어허, 너희들은 옷이 없으리니 나의 부끄러움이요, 너희들은 배고프고 목마를 것이니 내 기름진 음식을 넘긴들 무엇이 편안하겠느냐.
바람 불고 서리 찬 국경으로 임금의 가마는 파천하고 갑옷 번쩍이고 말발굽 요란하던 옛 도성의 선왕 무덤은 천리나 떨어졌으며 돌아가려는 한줄기 생각이 물이 동으로 흐르듯하더니 적의 형세가 기울어짐에 과연 하늘이 화를 푸는 줄 알겠도다.
나는 임금의 교서를 장졸들에게 읽어주었다. 장졸들은 땅바닥에 꿇어앉아 울었다. 교서와 함께 임금이 내려준 무명을 한자씩 잘라서 장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임금의 교서를 받는 날에는, 북쪽 국경 행재소 대청마루에 쓰러져 우는 임금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임금의 언어와 임금의 울음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임금은 울음과 언어로써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언어와 울음이 임금의 권력이었고, 언어와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은 보이지 않았다. 임금의 전쟁과 나의 전쟁은 크게 달랐다. 임진년에 임금은 자주 울었고, 장려한 교서를 바다로 내려 보냈으며 울음과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날은 번뜩였다. 임진년에는 갑옷을 벗을 날이 없었다. 그때 나는 임금의 언어와 울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차고 푸른 해거름에 소복을 입은 임금은 동헌 마루에 쓰러져 울었다. 의주까지 호종(扈從)해서 따라온 중신들은 임금을 따라 울었다. 평양에 적이 들어왔고 북경으로 간 청병(請兵)의 사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서울의 적들은 종묘를 불질러 마구간을 차렸고 유림은 흩어져 근왕(勤王)의 기척도 없었다. 임금은 깊이 울었다. 임금은 버리고 떠난 종묘를 향해 남쪽으로 울었고, 북경을 향해 울었고 해뜨는 동쪽을 향해 울었다. 쓰러져 우는 임금의 야윈 어깨가 흔들렸다. 임금의 울음은 달래지지 않았다. 임금은 사무치게 울었다. 아무도 임금의 울음을 말릴 수 없었다. 강 건너로 지는 해가 마루위로 도열한 중신들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고, 중신들은 임금의 울음이 스스로 추스러질 때까지 임금을 따라 울었다.
서울을 버리기 전날 밤에 임금은 말했다.
- 종묘와 사직이 여기에 있는데 내가 어디로 가겠느냐
그 때 임금은 장안의 짚신을 걷어 들였고, 왕자와 비빈들에게 피난 차비를 갖추게 하고 있었다. 서울을 버릴 때 임금은 울었다. 임진강을 건널 때 임금은 중신들을 부르며 울었다.
- 성용아, 두수야,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이냐?
개성을 버릴때 울었고 평양에 닿았을 때 울었고 평양을 버릴 때 울었다. 평양을 버리기 전날 좌의정 윤두수는 임금에게 말했다.
- 온 평양 백성이 전하와 더불어 죽기로 이 성을 지키기를 원하나이다. 민심이 이만하니 성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행차가 또 평양을 떠나시면 나라는 일시에 무너질 것입니다.
임금은 대답했다.
- 경의 말이 옳으나 너무도 답답하다.
하삼도(下三道, 삼남)가 서로 내응해서 속히 창의의 군사를 휘몰고 올라오라는 교지를 써서 호남으로 보내고 나서 임금은 또 길에 울었다. 창호지 반조각을 잘라낸 종이에 가는 붓글씨로 쓴 교지였다.
평향을 떠날 때 비가 내렸다. 임금의 가마가 의주에 닿았을 때 호종 관원은 50여명이 남았다. 강을 건널 때마다 관원들은 달아났고, 달아난 자들을 잡아올 수도 없었다.
의주는 비어있었다. 백성들이 흩어져 버린 마을에는 인기척이 없었고 개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빈 마을에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의주가 멀리 보이는 언덕에서 임금은 가마를 세우고 남쪽을 향해 또 길에 울었다.
때때로 명나라 황제의 사신이 압록강을 건너왔다. 임금은 강가 나루터에서 황제의 사신을 맞았다. 사신이 황제의 말을 전했다.
너희가 본래 부강하다 하였는데 하루아침에 이 지경에 이른 까닭을 짐은 의아하게 여긴다.
임금은 길에 울었다. 신하들도 따라 울었다. 사신이 또 황제의 말을 전했다.
너희가 신하된 나라의 굳셈을 잃지 말고 스스로 조치하라.
임금은 흐느껴 울었고 중신들도 울었고 백성들도 울었다. 명의 구원병이 압로강을 넘어왔을 때 임금은 강가에까지 마중나가 울었다.
계사년에 임금은 환도했다. 정월에 의주를 떠난 임금의 가마는 그해 10월에 서울에 닿았다. 무악제를 넘자 모화관에서부터 백골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불타버린 대궐과 관청자리에 쑥부쟁이가 뒤엉켰고 갓 죽은 송장들이 불탄 대궐 앞까지 가득 널렸다. 서울로 돌아온 날 임금은 교서를 내렸다.
.... 이제 서울 백성들 중 죽은 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터이다. 살아남은 백성들이 마땅히 상복을 입고 있어야 하거늘, 상복입은 자를 볼 수 없으니 괴이하다. 난리중에 강상이 무너지고 윤기(倫紀)가 더렵혀진 탓이로되, 내 이를 심히 부끄럽게 여긴다. 서울의 각 부는 엄히 단속하여라.
임금은 종묘의 폐허 나가 길고 슬픈 울음을 울었다. 임금은 날을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울었다. 생원들이 상소를 올렸다.
.... 오늘 나라가 이지경이 된 것은 모두 류성용, 이산해의 죄입니다. 바라옵건대, 베어서 백성을 위로하시고 사직에 고하소서.
임금은 대답하지 않고 또 울었다. 임금의 울음은 달래지지 않았다. 임금은 기진하도록 슬피 울었고 길게 울었다. 임금의 울음은 정무(政務)와도 같았다. 임금의 울음은 뼈가 녹아 흐르듯이 깊었다. 남해 바다에까지 들리는 임금의 울음은 울음과 울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칼을 예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임금은 끝끝내 혼자였고 임금만이 적으로 둘러싸인 사직의 장자(長子)였다.
임진년에서 정유년에 이르는 동안에 나는 남해안 여러 수영에서 때때로 임금이 주는 교서를 받았다. 선전관이 교서 한 통을 들고 의주나 서울에서 남쪽 바다에까지 내려왔다. 임금의 언어는 장려했고 곡진했다. 임금의 언어는 임금의 울음을 닮아 있었다.
너희들이 아비로서 자식을 편히 못기르고 지아비로서 지어미를 보호해 주지 못하며, 죽어서 간과 골이 땅에 흩어지고, 죽어서도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은 모두 다 나의 허물이다. 올해도 결국 또 저물어 바람이 차가운데 나는 객지로 떠돌며 벼들어, 저 "시경"에 이른바 <눈비 내릴 때 떠나왔으되 어느덧 버들꽃 흩날린다>는 노래 그대로 세월의 덧없음을 견디지 못할지니라.
내가 따스운 옷을 입을 적이면 너희들은 옷이 없을 것이요, 수북이 담은 밥을 먹을 때 너희들은 밥이 없을 것이니 내 너희들의 배고픔을 생각했으며, 내 침소에 누워 잠을 청할적에 한데서 떨며 잠 못 드는 너희들의 밤을 생각하였다. 나라가 가난하고 백성의 힘이 다하여 너희들의 옷, 밥을 살피지 못하니 내 쓰리고 아픈 마음이 어찌 몸뚱이에 병이 든다 한들 이보다 더하랴.
너희들이 갑옷을 오래입어 서캐가 생겼으리니 어찌 참을 베고 자는 자의 괴로움을 견디어내느냐. 찬 바람 속에서 잠들며 외로이 떠도는 길에 쓰라린 정회가 깊을 것이며 습기 찬 안개속에서 병들어 죽는 근심도 크리라.
이제 가을바람이 불어 너희들의 그 남쪽 바다는 한결 더 추우리니, 어허, 너희들은 옷이 없으리니 나의 부끄러움이요, 너희들은 배고프고 목마를 것이니 내 기름진 음식을 넘긴들 무엇이 편안하겠느냐.
바람 불고 서리 찬 국경으로 임금의 가마는 파천하고 갑옷 번쩍이고 말발굽 요란하던 옛 도성의 선왕 무덤은 천리나 떨어졌으며 돌아가려는 한줄기 생각이 물이 동으로 흐르듯하더니 적의 형세가 기울어짐에 과연 하늘이 화를 푸는 줄 알겠도다.
나는 임금의 교서를 장졸들에게 읽어주었다. 장졸들은 땅바닥에 꿇어앉아 울었다. 교서와 함께 임금이 내려준 무명을 한자씩 잘라서 장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임금의 교서를 받는 날에는, 북쪽 국경 행재소 대청마루에 쓰러져 우는 임금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임금의 언어와 임금의 울음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임금은 울음과 언어로써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언어와 울음이 임금의 권력이었고, 언어와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은 보이지 않았다. 임금의 전쟁과 나의 전쟁은 크게 달랐다. 임진년에 임금은 자주 울었고, 장려한 교서를 바다로 내려 보냈으며 울음과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날은 번뜩였다. 임진년에는 갑옷을 벗을 날이 없었다. 그때 나는 임금의 언어와 울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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